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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9 구급대원입니다. 어르신 아들님 이시죠?"
    일상(Life)/하늘아빠 육아일기 2022. 7. 2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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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신풍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이미 이모님들하고 큰외삼촌 형님들이 장례식장에서 조문 오신 분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다! 어제 요양병원에서 치료 중이시던 큰외삼촌께서 여든일곱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나는 오늘 아침 아버님께 연락을 받고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은 집에 있으시게 하고 홀로 차를 몰고 공주 신풍장례식장에 왔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서로 왕래가 없다 보니 약간 서먹서먹한 가운데 오랜만에 만난 외갓집 친척분들하고 안부를 묻고 장례식장 상차림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님 전화였다.

    "네~ 아빠 잘 도~~~~"
    "여보세요! 119 구급대원입니다. 어르신 아드님 이시죠?
    "아! 네!! "
    "어르신께서 기절하셨다가 지금은 깨어나셨는데 병원 응급실로 이송 중이세요. 병원으로 오실 수 있나요?"
    "바로 올라갈게요! 너무 감사합니다."

    큰 외삼촌 장례식장에서 형님들과 이모님들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서둘러 차를 몰고 서울로 향했다. 병원에는 미술학원에 가있는 아들을 데리고 아내가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 응급실로 먼저 향했다.
    걱정되는 마음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어 지금 아이랑 응급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어"
    "아버님은 어떠셔?"
    "CT는 찍었는데 머리에는 이상이 없으시고 하루 이틀 병원에 입원해서 경과를 봐야 한데!"
    "어. 그래 알았어 빨리 갈게 조금만 기다려"

    서해안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들어선 서부간선도로는 퇴근 시간과 맞물려 거북이보다 더 느린 차량들이 왕복차선을 가득 메웠다. 병원에 도착하기 십 분 전 전화를 걸었더니 아내가 입원 수속을 하고 5층 병실에서 아버님을 모셔드렸다고 한다. 아이랑 함께 있어 여보가 와서 아버님 봐드려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마음이 급하다. 병원에 도착해 지하 3층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병원 5층으로 바로 올라갔다. 입퇴원 할 때만 보호자 면회가 가능하다. 아이 손을 맞잡은 아내가 보인다. 눈인사를 하고 아내는 1층으로 내려 보내고 5층 카운터에서 열을 재고 신원을 확인한 후 방문일지에 사인을 하고 병실로 향한다.

    병실 맨 안쪽에 창가 자리 옆에 아버님이 침대에 앉아 계신다. 아빠하고 불렀으나 아버님은 처음에 내가 왔는지 잘 모르신다. 아버님 시력이 많이 안 좋아진 탓이다. 아버님을 보니 눈물이 나려는 걸 애써 참으며 말을 했다.

    "아빠! 나 왔어!'
    "으.. 응... 여기 어디...."

    뒤를 따라 들어오는 간호가가 입원복을 환복 해야 한다며 옷을 놓고 간다. 갈아입히기 위해 옷을 벗기는데 윗옷과 러닝이 땀으로 흠뻑 졌어 있다. 아버님은 아들을 홀로 장례식장에 보내고 본인 조의금으로 부탁한 돈을 찾기 위해 그 더운 오후 2시에 집에서 나가 돈이 아까워 마을버스도 타지 않은 채 근 1 Km 되는 우체국까지 걸어서 일을 보시고 힘들어 벤치에 앉아 계시다가 갑자기 온통 세상이 어두워졌다고 한다(깨어보니 며느리가 보여서 깜작 놀랐다고 하신다).

     

     

    일단 위급한 상황은 아니라고 하니 그나마 한 숨을 돌린다. 아버님께 많은 말을 쏟아 내고 싶었지만 아버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더 이상 아버님께 말을 하지는 않았다. 아버님을 환복 해 드리고 침대에 누워드리는데 더 슬퍼진다. 최근 임플란트와 틀니를 하셔서 식사를 마음껏 하시는 통에 체중이 불어 가뜩이나 기력이 약해 몸을 잘 못 가누셨는데 지금은 지팡이가 없으면 홀로 걸으시는 것도 많이 불편하신 상황이다. 상체를 옮기는 데도 내 힘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아버님을 안심시켜 드리고 필요하신 용품 챙겨서 넣어 드릴 테니 내일까지 잘 계시라고 내일 MRI 예약해 놓았으니 검사받으실 거라 알려드리고 병실을 나섰다.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왜 아버님 혼자 나가게 하셨냐고 따져 물으려 했지만 그전에 여동생이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뭐라 한 눈치다. 아내와 아이는 밥도 못 먹고 가서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에 밥을 챙겨주시는 어머니를 나는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도 다리가 불편하셔서 밖에 나가시는 것을 꺼려 하신다.

     

    본가 소파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린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고 아이가 커갈수록 부모님은 쇠약해진다. 장남으로서 잘 돌봐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앉아서 속으로 울고 있었다. 내가 슬픔에 빠져 있으면 집안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지니 맘 놓고 울 수 도 없다. 어머님이 미리 챙겨놓으신 아버님 소지품과 입원 용품들을 챙겨서 일산 집으로 가기 전에 병원에 들러 1층 관계자분께 전해드리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 하루는 정말 긴 하루였다. 아이들 키우면서 아이가 커가는 기쁨도 크지만 그와 반대로 쇠약해지는 양가 부모님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이겨 내고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장례식장과 응급실을 하루에 오가며 내가 세상에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잊지 못할 하루가 지나간다. 집에 와서 양파를 듬뿍 넣은 어머님표 돼지고기 블백에 하이볼 한 잔으로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 못하 나를 위해 목을 축였다. 산사람은 살아햐 하는 것이다.

     

    P.S 기절하신 아버님을 119에 신고해주신 이름 모를 시민분과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안전하게 병원 응급실까지 이송해주신 구급대원 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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