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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의 일요일 (feat. 윌리엄 진서_글쓰기 생각쓰기)
    일상(Life)/자영업자 생존일기 2025. 3. 1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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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6일 일요일 (다시 추워짐) 금연 33일 차

    일요일은 나도 모르게 몸이 쳐진다. 일요일이라는 단어가 주는 나태함이라고 할까? 일요일은 원래 몸이 쉬는 날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일하게 되었다. 침대에서 나오기가 싫다. 5분만 더 5분만 더 하다가 그만 6시 50분이 되었다. 부랴부랴 세수하고 양치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큰 게 마렵다. 집에서 해결할까? 아니면 출근해서 해결할까? 하다가 집에서 해결하고 간다. 7시가 넘기 전에 배달 앱 영업정지부터 세팅한다. 쿠팡은 7시가 넘어서 1시간 영업정지 설정을 했다. 맘 편히 일을 보고 후다닥 마리로 출근을 한다.

     

    일요일은 오늘 예수인 교회 단체 건 주문이 있다. 이제는 매주라고 해도 되겠다. 오전 8시까지라서 아직 여유가 있다. 햄치즈 단품 15개다. 주문 금액이 크지 않지만 매주 시키는 단골이기 때문에 신경 써서 음식을 만든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오셨다. 커피 한 잔 가져가셔라 했더니 오늘은 너무 바빠서 바로 가야 한다며 정중히 거절하신다.

     

    샐러드 바 냉장고를 보니 샤워크림 드레싱이 거의 없다. 몇 개 나가면 오늘은 주문을 해야 될 것 같다. 샤워크림은 주문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어라. 그런데 배달 샐러드드레싱이 샤워크림이다. 야. 정말 기가 막히다. 손님들은 재료 없는걸 귀신같이 알아챈다. 배달 주문이 2개 연속 들어온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역시 홀에 키오스크 주문을 하시는 손님이 있다. 정말 매장이 조용하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한꺼번에 몰려 들어온다. 매번 음식을 하면서도 혼잣말로 정말 귀신같다. 귀신같아. 손님들은 정말 귀신같아.

    손님은 항상 옳다! 주문은 항상 몰려오고 재료가 없고 만들기 힘든 것을 찾는다. 

     
     

    음식을 서두르다 보면 꼭 실수를 하게 된다. 급한 마음에 커피를 빨리 뽑다가 포터필터가 추출하는 중간에 빠진다. 2년 전에도 추출하던 포터필터가 빠지면서 손목에 닿아 화상을 크게 입었었다. 오늘은 다행히 빗겨나가서 바닥에 떨어진다. 커피 찌꺼기를 치워야 한다. 배달 주문이 또 하나 들어온다. 드레싱이 샤워크림이다. 이젠 할 말이 없어진다. 그냥 하는 수밖에 다행히 샤워크림은 매장 마감 때까지 겨우겨우 맞혀서 배달이 나갔다. 다행이다. 손님이 주문한 재료가 없으면 정말 난감하다.

    오후 3시 아버님 전화다. 아버님 전화는 조금 긴장이 된다.

    "어 아빠야"

    "네"

    "오늘 집에 오지? 입맛이 없어 올 때 샌드위치 하나 싸와"

    "네네... 근데 아빠 목소리가 안 좋은데 감기가 심한 거 같아?"

    "아냐! 자다 일어나가 그래"

    4시 마리 마감을 하고 집에서 차를 가지고 아들과 함께 아버님 월세방으로 향한다. 가기 전 행신 어린이 도서관에서 상호대출을 신청한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2' 찾았다. 월세방에 도착해서 아버님방으로 바로 가서 인사를 한다. 아버님이 자다 깨서 일어나서 말씀을 하시는데 목소리가 잠겼다. 자고 일어나고 그런 건지 아파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다. 얼굴도 조금 부었다. 걱정이 앞선다. 감기가 심해지셨다. 어제 아버님 댁에 갖다 논 소고기를 굽고 저녁상을 차린다. 아버님이 평소에 저녁 식사를 5시쯤 하셔서 바로 준비한다. 아버님은 내가 싸 온 샌드위치 반쪽이 저녁 식사다. 입맛이 없다고 나에게 부탁했었다. 괜찮겠지. 괜찮으실 거야.

    일요일에는 인슐린 주사는 내가 맞혀 드린다. 일반 주사기였을 땐 아버님이 직접 맞으셨는데 인슐린 펜으로 바뀐 후 부터는 줄곧 내가 맞혀 드린다. 평일은 주간 보호 센터 간호사가 놔주신다. 평소에는 일어나서 옷을 걷어 올리시는데 오늘은 힘드신지 침대에 누워서 웃옷을 올리신다.

    "아빠! 가볼게요. 어디 아프시면 바로 전화해야 되셔요"

    "알았어! 걱정하지마"

    "네. 갈게요"

    "그래, 잘 가!"

    아버님 댁을 나와서 백석에 있는 벨라시타 '러쉬'로 향했다. 아들이 들어가면 나에게는 2시간 자유시간이 생긴다. 아들아이가 들어가기 전에 아빠도 같이 들어가면 안 돼? 하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아냐.. 너 혼자 들어가서 놀아. 아빤 밑에 스타벅스 가 있을깨. 아들을 들여보낸 후 스타벅스로 내려온다. 며칠 전 샀던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 책을 읽는다. 스타벅스에는 맥북을 꺼내서 일을 하듯이 책을 읽는 거는 주변을 좀 의식하게 된다. 

     

    윌리엄 진서_ '글쓰기 생각쓰기'_돌베게

     

     

    글쓰기는 생각쓰기다. 책을 읽으면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정제된 글이라기보다는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좋을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던한 노력이 필요하다. 윌리엄 진서의 글은 처음부터 빠져 든다. 아직 다 읽지 않았지만 내 곁에 두고 두 번 세 번 읽어야 될만한 책이다. 

     

    서문에 윌리엄 진서가 글쓰기의 본보기로 삼았던 작가 E.B 화이트 이야기가 있다. 맨해튼 중부에 있는 윌리엄의 사무실 벽에는 그 의 사진이 걸려있다고 한다. 구글링을 해서 사진을 찾아 보았는데 정말 인상적인 사진이다. 화이트가 일흔일곱 살 때 자신의 노스브루클린 자택에서 사진가 '질 크레멘츠'가 찍었다. 작은 보트 창고 안, 판자 세 장에 네 다리를 못으로 박은 수수한 나무 탁자가 놓여 있고, 수수한 나무 벤치에 백발의 남자가 수동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다. 노작가의 소박한 모습이지만 그 사진 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피어나고 있다. 

     

    오늘은 이 사진을 본 것만으로도 행복한 하루다. 

     

    작가 E.B. 화이트_ 화이트가 일흔일곱 살때 노스브루클린의 자택에 있는 모습을 질 크레멘츠가 찍은 사진이다.

     

    P.S

    아들아이가 본인이 오늘 노브랜드에서 산 트랜스포모 원 캐릭터인데 너무 좋다고 만들고 나서 사진을 찍어서 아빠 블로그에 올려달라 한다. 시리즈가 10개 있는데 다 모을 생각이라고 하는데 참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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