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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33] 다시, 월요일의 무거운 발걸음과 33일
    삶과 사유의 기록/50대 인생 2막 도전기 2026. 9. 2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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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월요일!

     

    점점 몸이 게을러진다. 보통은 새벽 5시면 눈이 번쩍 떠져서 6시 전에는 카페 불을 켜고 그릴을 닦으며 장사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 7시가 다 되어서야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겨우 집을 나섰다. 어제저녁 동네 최고 맛집인 샤브야에서 뜨끈한 샤브샤브에 마지막 계란 볶음밥까지 배 터지게 밀어 넣은 탓도 있겠지만, 그것만은 아닐 테다.

     

    숨이 턱턱 막히던 그 미칠 듯한 여름날도 지나가고 이제 좀 살만해진 날씨인데, 머릿속 생각과 달리 몸뚱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 폐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심리적인 해이함 때문일까.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원래 군대 말년처럼 몸부터 풀리는 법이다.) 10월이면 이 지긋지긋하면서도 정들었던 가게 문을 닫고 개인택시로 넘어가야 하는데, 새로운 시작에 대한 막연함이 마치 짙은 안갯길을 홀로 걷는 듯 막막하다.

     

    변함없는 단골들, 그리고 놓쳐버린 손님 하나

    역시나 오늘 첫 마수를 터준 손님은 장부를 달아놓고 마시는 이웃 회사 사장님이다. 언제나처럼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경기가 개판이라 다들 힘들 텐데도 이렇게 잊지 않고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씩 팔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뒤이어 옆 건물 회사의 유쾌한 부장님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사실 부장인지 이사인지 정확한 직급은 모르겠다.) 주말이면 가끔 가죽 재킷에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왠지 모르게 나와 결이나 취향이 비슷해 보이는 사람이다. 오늘도 직원 한 명을 데리고 들어와 아이스커피에 토스트 콤보를 시켜놓고 특유의 호탕한 목소리로 웃고 떠들다 나갔다. 이런 손님들을 마주할 때면 잠시나마 묵은 피로가 가시는 기분이다.

     

    오전은 평상시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흘러갔다. 11시부터 포장 전화가 울리고, 12시 정각이 되자마자 점심 손님들이 착착 문을 밀고 들어온다. 우리 가게 점심 손님들은 9할이 단골이라, 들어오자마자 인사 대신 키오스크로 직행해 능숙하게 주문을 넣는다. 그런데 아뿔싸, 마지막으로 들어선 직장인 손님에게 앞에 밀린 주문이 많아 음식이 나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 손님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도 안 돌아보고 문을 열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1분 1초가 황금 같은 직장인의 점심시간을 너무도 잘 알기에 야속한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매출 1만 원이 아쉬운 처지에 발걸음해 준 손님을 내 손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이 옹색한 상황이 그저 미안하고 쓰릴 뿐이다. (손님 하나 놓칠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난다.)

     

     

    정말 오랜만에 따뜻한 라테를 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ㅎㅎ

     

    식어버린 라테 한 잔과 퇴근길의 역습

     

    오후 1시 40분, 콥샐러드 한 접시를 내보낸 것을 마지막으로 주문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마감 시간까지 매장 안은 적막 그 자체였다. 평일에는 아무리 못해도 매출 20만 원 선은 쳐올려줘야 월세 내고 재료비 대고 내 인건비 한 푼이라도 건지는데, 오늘은 턱없이 모자란 수치다. 손님이 없으니 멍하니 돌아가는 에어컨부터 껐다.

     

    전기세라도 아낄 겸 카운터에 앉아 넷플릭스로 드라마 <미생>을 틀었다. 2014년에 방영했던 작품인데 12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촌스러운 구석이 하나 없다. 그때 그 젊고 풋풋하던 주연 배우들이 지금은 죄다 대배우가 되어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걸 보니 세월 참 빠르다 싶다. 그 시절엔 인공지능이니 AI 에이전트니 하는 건 상상도 못 하던 때였는데,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별걸 다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격세지감도 이런 격세지감이 없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미쳐 날뛰어도, 밥벌이 현장에서 인간들끼리 부대끼며 겪는 희로애락의 무게만큼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미생을 멍하니 보다가 문득 내 2014년의 가을과 겨울은 어땠는지 궁금해져 구글 포토를 뒤적였다. 젊었던 내 얼굴, 훌쩍 자라버린 아들의 어릴 적 모습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렇게 슬슬 바닥을 쓸고 쓰레기통을 비우며 집에 갈 채비를 하던 찰나, 5시 46분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쿠팡이츠 배달 주문이 떴다.

     

    햄치즈 콤보 5개에 바질 토스트 콤보 1개. (휴, 10분만 일찍 그릴 불을 껐더라면 꼼짝없이 주문 취소 누르고 피눈물 흘릴 뻔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둘러 빵을 그릴에 올리고 굽기 시작하는데, 이번엔 5시 50분에 매장 유선 전화벨이 울린다. 근처 아파트 7단지에 있는 피아노 학원 원장님의 단체 주문 문의였다. 처음 주문하시는 거라 메뉴 구성부터 배달 시간까지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어보시는데, 불판 위에서는 토스트가 지글지글 타들어가고 있고 하필 블루투스 헤드폰은 폰이랑 연결도 안 해놓은 상태였다. 결국 턱과 어깨 사이에 핸드폰을 바짝 끼워 넣고, 고개를 꺾은 채 통화를 이어가며 양손으로는 집게를 놀렸다. 관자놀이가 찌릿하고 목덜미가 뻐근해지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세상에 거저먹는 장사는 죽어도 없다.)

     

    포스기 앞 선반 구석에는 아까 한가할 때 마시려고 타두었던 따뜻한 라테 한 잔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샤갈, 오늘도 참 쉽지 않다. 그래도 빵은 다 구웠고, 학원 주문 통화도 어찌어찌 끝냈다. 이제 배달 기사님한테 봉투 넘기고 진짜 마감을 할 시간이다. 비록 매출은 바닥을 기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를 어금니 깨물고 또 버텨냈다. 가게 문을 닫기까지, 이제 딱 33일 남았다.

     


    [D-33 오늘의 마감 정산]

    • 오늘의 총매출: 185,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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