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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6] 불 꺼지지 않는 골목과 빗속의 현충원삶과 사유의 기록/50대 인생 2막 도전기 2026. 9. 25. 18:34반응형
9월 들어 처음으로 맞이하는 온전한 휴일이다. 추석 당일. 매일 새벽 지겹도록 울려대던 알람도 꺼두고, 매장 셔터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깨를 짓누르던 짐이 반쯤은 덜려 나간 듯 마음이 가볍다. (이전 직장 다닐 때 연휴는 그냥 거저먹는 꿀이었는데, 지금은 한 달에 단 하루 쉬는 것도 감지덕지다.)
하지만 몸에 밴 가난한 습관 탓인지 쉬는 날조차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 잠을 길게 자버리면 쥐꼬리만 한 휴일의 시간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게 괜스레 아깝다. 밤새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를 뒤적거리다가, 귀로는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자는 둥 마는 둥 뜬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새벽 5시쯤 되었을까, 인기척에 방 밖을 내다보니 아내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고 있다. 마감이 코앞으로 닥친 원고를 쓰느라 밤을 꼬박 새운 모양인데, 눈도 붙이지 못하고 추석 차례상에 올릴 제수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다. 냄비에서는 구수한 소고기뭇국이 끓고, 프라이팬에서는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번진다. 과일을 다듬는 아내의 굽은 등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구석이 짠해진다.
원래대로라면 이른 아침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넘어가 부모님이 모셔진 충혼당에서 제를 올리는 게 맞지만, 올해는 집에서 조촐하게 차례를 먼저 모시고 오후에 현충원을 다녀오기로 했다.

제기의 3분의 2는 버리고 조촐하게 차례를 지냈다. 고마워 여보. 2시간의 정체, 그리고 장대비 속에 누우신 부모님
늦은 아침잠을 잠깐 청하고 일어나 오전 10시경, 아들과 함께 옷을 갖춰 입고 정성껏 차례를 올렸다. 밤샘 마감으로 녹초가 되었을 텐데도 묵묵히 제사상을 차려낸 아내가 참 고맙고 미안하다. 살아생전 시부모님이 며느리 귀한 줄 알고 살뜰하게 챙겨주신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아내는 나 같은 불효자보다 훨씬 더 지극정성으로 우리 부모님을 챙겼다. (남편 잘못 만나 새벽부터 기름 냄새 맡으며 고생하는 아내를 보면 늘 빚진 기분이다.)
아들과 셋이서 늦은 아침을 배불리 물리고 부랴부랴 짐을 챙겨 현충원으로 향했다. 집에서 동작동까지 평소 같으면 올림픽대로 타고 20분이면 끊을 거리인데, 오늘은 서울 시내 도로 전체가 거대한 주차장이다. 현충원 진입로 부근은 차들이 아예 꼬리를 물고 멈춰 섰다.
결국 2시간이 꼬박 걸려서야 현충원 제2충혼당에 도착했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장대비가 쏟아져 내린다. 올여름 지긋지긋했던 장마가 끝난 뒤 참으로 오랜만에 쏟아지는 폭우다. 빗줄기를 뚫고 들어가 부모님 앞에 섰다. 차가운 유리벽 너머로 모셔진 두 분의 유골함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래도 한곳에 나란히 합장되어 계시니 저세상 길에서 서로 외롭지는 않으시겠지. 마음속으로 몇 마디 삼키지 못한 말을 건네고, 굵어지는 빗발 속에서 현충원 언덕길을 잠시 거닐다가 다시 차에 올랐다.

아들도 이젠 제법 컸다. 
부페에서 너무 많이 먹었다. 만석이 된 뷔페, 그리고 쉬지 못하는 골목의 불빛들
서울을 빠져나와 늦은 점심 겸 저녁을 해결하려는데 갈 만한 곳이 마땅찮다. 명절날 뜨끈하게 한 그릇 비우고 싶었던 명동칼국수나 든든한 곰탕집 하동관은 어김없이 추석 휴무 팻말을 내걸었다. 하루 종일 제사 음식 만드느라 진이 다 빠진 아내에게 명절날 저녁 밥상까지 또 차려달라고 부탁하는 건 사람 도리가 아니다. 결국 핸들을 돌려 집 근처 애슐리 퀸즈 화정점으로 향했다.
명절 저녁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매장 안은 이미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다들 우리 집처럼 명절 차례를 마치고, 연 곳 없는 식당을 피해 가족 단위로 몰려나온 모양이다. 허기가 졌던 탓인지 접시를 몇 번이나 비워내며 미련하게 퍼먹었다.(이 짓을 매번 반복하면서도 왜 조절을 못 하는지,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뒤늦게 후회해 봤자 이미 버스는 떠났다. 내일은 매장에서 물만 마시며 하루 굶어야겠다.)
가족들을 집 앞에 먼저 내려주고 아파트 단지에 주차를 마쳤다. 내일 당장 아침 일찍 출근해 카페를 열어야 하니, 재료 상태도 살피고 밑준비도 미리 해둘 겸 슬슬 걸어서 매장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묘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동네 고깃집들이며 식사할 만한 밥집들이 죄다 불을 훤히 켜고 정상 영업을 하고 있었다. 카페 앞, 옆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식당과 카페들이 셔터를 올린 채 손님을 받고 있다. 평소 평일 저녁 골목 풍경과 다를 바가 없다.(원래 예전 같으면 추석 당일 하루만큼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골목 전체가 쥐 죽은 듯 문을 닫아걸었었다. 그런데 쉬는 집이 단 하나도 없다.)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장사가 얼마나 안되고 먹고살기가 팍팍하면,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 추석 당일에 불판을 달구고 앞치마를 두른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겠는가. 오늘 문을 닫으면 내일 나갈 월세와 인건비가 감당이 안 되니, 명절의 온기마저 반납하고 길거리로 뛰쳐나온 거다.
자영업자들에게 명절 연휴는 이제 그저 사치일 뿐이다. 세상이 참 무섭도록 야속하게 변해버렸다.
내일 아침이면 나 역시 저 불 꺼지지 않는 골목의 한가운데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불판 앞에 서서 식빵을 굽고 계란을 말아 쥐어야 한다. 씁쓸한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매장 유리창 너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어쩌겠는가. 골목의 불빛들이 다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제자리를 버텨내고 있는데. 나 역시 내일 새벽이 오면 다시 셔터를 올리고 앞치마 끈을 질끈 동여맬 수밖에 없다.
[D-36오늘의 마감 정산]
- 오늘의 총매출: 0원 ( 추석 당일 휴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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