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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9] 길바닥에 버려진 음료 18잔과 카뮈의 이방인삶과 사유의 기록/50대 인생 2막 도전기 2026. 9. 22. 18:15반응형
새벽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토스 앱부터 켠다. 화면에 뜬 실리콘모션 주가를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매수나 매도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냥 묵묵히 들고 간다. 나는 날마다 요동치는 주가에 일희일비하러 들어온 게 아니라, 기업 자체의 가치에 내 시간과 자본을 걸었다. (그렇게 매일 아침 혼자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창사 이래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찍고 있고, 앞으로 2년 동안은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갈 텐데 이런 기업에 투자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에 한단 말인가.
기업의 펀더멘털에 금이 가지 않는 한 내 포지션은 쭈욱 그대로 간다.
1인 매장의 전쟁, 그리고 길바닥에 버려진 18잔
추석 대목을 앞두고 발주량을 평소보다 넉넉하게 넣었다. 명절 연휴 동안에는 본사 물류도 멈추고 야채와 계란 배송도 오늘로 끝이다. 연휴 내내 홀로 불 앞을 지키며 장사를 이어가려면 냉장고와 냉동고가 터져나가도록 재료를 쑤셔 박아둬야 한다. (모든 걸 혼자 하려니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동원 물류 탑차에서 앳된 얼굴의 새 기사가 짐을 부린다. 처음엔 길이 서툴러 나보다 한참 늦게 오더니, 제법 손에 익었는지 배송 시간이 꽤 당겨졌다. 묵직한 박스를 접어서 키오스크 앞에 가지런히 놓고 가는 꼴을 보니 참 성실한 친구다. 저런 젊은 친구들을 보면 왠지 짠하면서도 대견하다.
오전 8시 정각, 기다렸다는 듯이 배민 알림이 요란하게 울린다. 샌드위치와 스프, 토스트, 커피. 첫 배달을 여유 있게 빼내고 곧장 계란을 삶는다. 주방용 웍에 찬물을 가득 붓고 계란 20알을 넣은 뒤 타이머를 15분에 맞췄다. 주방 가스 밸브는 딱 하나만 열어 은근히 끓인다. 옆에서는 계란 한 판을 통째로 깨 넣고 소금과 우유, 후추를 쳐서 계란 베이스를 친다. 잘 믹스해 냉장고에 넣고 숨을 죽여야 두툼하고 폭신한 오믈렛이 나온다.
양상추를 씻고 방울토마토 꼭지를 따는데, 꼭 이럴 때 홀 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선다. 1인 매장의 숙명이다. 뭐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힘들다. (손이 네 개였으면 좋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매일 한다.)
10시 44분, 포스기 옆 전화벨이 울린다. 코끼리 유치원이다. "사장님, 혹시 12시까지 음료 18개 배달 가능할까요?"
시계를 보니 10시 45분. 11시가 넘어가면 인근 장부 쓰는 회사 단체 주문에, 점심 전화 주문이 쏟아져 들어올 시간이다. 음료 18잔을 뽑아내면 다른 주문을 손도 못 댈 텐데. 머릿속으로 초 단위 동선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유치원은 군말 없이 계좌로 현금을 바로 쏴주는 고마운 단골이다. (통장에 찍히는 현금 생각에 욕심을 냈는지도 모르겠다.) "네, 가능합니다. 제시간에 맞춰 보내겠습니다."
오전에 들른 아내가 주문한 BLT 샌드위치와 점심 밀박스를 만들면서 음료 18잔을 정신없이 뽑아냈다. 11시 30분, 가까스로 패킹을 끝내고 바로고 웹페이지를 열어 배달을 띄웠다. 금액 74,600원은 이미 결제해 두어 기사가 현장에서 카드 긁을 일도 없게 했다. 그런데 들어온 배달 기사가 테이블 위 음료 18잔을 보더니 슬쩍 사진부터 찍는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배달비에 50% 할증이 턱 하니 붙는다. 무거우니 그럴 수 있다 치고 속으로 삭였다. (더러워도 장사하려면 참아야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에게서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기가 찼다. "유치원 문이 잠겨 있고 전화를 한 번 했는데 안 받아서요. 그냥 대문 앞 길바닥에 놓고 갑니다."
확인차 유치원에 전화했더니, 아이들이 밖으로 뛰쳐나갈까 봐 대문을 잠가둔 거라며 담당자가 푸념을 늘어놓는다.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바탕 쏘아붙였다. 할증 요금까지 챙겨갔으면 최소한 전화라도 두어 번 더 해보거나 인터폰을 눌렀어야지, 먹을 음료를 흙먼지 날리는 길바닥에 던져두고 가면 어쩌자는 말인가.
배달 기사들에게 음식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빠르게 던져놓고 다음 건수 찍는 게 전부다. 정성껏 포장해 둔 봉지를 들어와 낚아채듯 한 손으로 들고 나갈 때마다 내 속도 함께 짓이겨진다. 샐러드가 뒤집히든 음료가 새든 알 바 아니라는 태도. 따지고 싸워봤자 내 시간만 축나고 남은 장사만 망치니, 영수증 뭉개듯 내 속을 구겨 쓰레기통에 처박을 뿐이다. (참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12시 전후로는 단골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요 며칠 이상하리만치 점심 주문이 많다. 12시 딱 한 시간 동안 찍힌 매출만 8만 원이 훌쩍 넘었다. 손바닥과 발바닥에 땀이 밸 지경이다. 정신없이 팬을 돌리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샌드위치 다 해놨어?" 매장 쪽으로 걸어오다 꽉 찬 홀을 보고 전화한 모양이다. "어... 어어! 해 놨어!" 숨이 차올라 소리치듯 전화를 끊어버렸다. 손은 두 개인데 음식 만들랴, 전화 받으랴 참 기가 찰 노릇이다.

오전에 처음보는 남자분이 샐러드를 시켜서 포장인줄 알았더니 홀에서 먹고 간다고 했다. ㅎㅎ. 깔끔하게 드셨네. 샌드위치 반 쪽, 그리고 카뮈의 이방인을 덮으며
오후 1시가 훌쩍 지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점심 주문 폭풍이 휩쓸고 간 주방을 대충 정리하고, 아내가 싸 가고 남은 샌드위치 반 쪽에 얼음 가득 채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늦은 끼니를 때운다.
카페 통창 너머로 길 건너편 홍합집 간판 밑 플래카드가 바람에 맥없이 나부낀다. 한낮 기온이 29도까지 올라 에어컨을 끌 수가 없다. 포스기 앞 이케아 높은 의자에 걸터앉아 '밀리의 서재'를 켰다. 피곤해서 활자는 눈에 안 들어오니 오디오북으로 틈틈이 듣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마지막 장을 틀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인죄보다 더 잔인한 패륜아 취급을 받으며 단두대에 서는 뫼르소. 그 담담한 결말을 들으며 마침내 완독했다. 문득 3년 전 어머니를 떠나보내던 날의 내가 겹쳐졌다. 그때 아내와 여동생은 참 많이도 울었는데, 정작 아들인 나는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희미하다.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코로나로 면회 한 번 못 해보고 기도 삽관 끝에 허망하게 가버리신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없고 황망해서 울 여유조차 없었던 거다.
뫼르소의 무감각했던 시선이나, 삶의 무게에 짓눌려 슬픔조차 사치였던 내 모습이나. 어쩌면 우리 모두는 세상 언저리를 겉도는 이방인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씁쓸한 생각을 삼키며 책을 덮었다.)

4년 동안 잔고장 없이 잘 견뎌준 커피머신 시메. ㅎㅎ 덜어낸 짐, 끝이 보이는 카페
오후 3시 무렵, 근처 고등학교에서 74,600원어치 단체 주문이 들어왔다. 점심의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이었지만 묵묵히 빵을 굽고 음료를 내렸다. (통장에 찍힐 돈과 가족을 생각하면 팔을 멈출 수가 없다.)
한창 샌드위치를 싸고 있는데 상가 관리소장이 매장 안으로 쑥 들어왔다. 폐업과 원상복구 문제로 며칠 동안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던 참이라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소장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사장님, 이번에 나가실 때 벽체랑 천장, 바닥, 그리고 가스계량기는 철거 안 하셔도 됩니다. 그냥 두고 가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속을 짓누르던 커다란 바위 하나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바닥 까내고 천장 뜯고 가스 배관까지 손대려면 기백만 원은 우습게 깨질 텐데, 그 막대한 비용과 골칫거리를 단번에 덜어낸 것이다. (세상이 늘 매정하게 굴지만은 않는 모양이다.)
11월 2일까지 철거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보증금 정산까지 끝내면, 지난 몇 년간 내 피땀과 기름 냄새가 찌들어 있는 이 카페도 정말 끝이다. 이제 정말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D-39 오늘의 마감 정산]
- 오늘의 총매출: 340,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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