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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41] 새벽 4시 반의 썰물, 그리고 일요일을 버티는 법
    삶과 사유의 기록/50대 인생 2막 도전기 2026. 9. 2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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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4시 반의 가게 앞 풍경은 바닷물이 썰물로 싹 빠져나가 뽀얀 모래사장 속살을 드러낸 갯벌 같다. 적막하다 못해 시리다. 간밤에 같은 오피스텔 1층 대하구이집 앞에는 담배꽁초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널브러져 있고, 꽁초 버리라고 둔 깡통에는 테이크아웃 커피 플라스틱 음료통이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다. 어떤 것은 반도 안 먹은 음료가 그대로 찰랑거린다. (저것도 다 돈인데,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장사치다.)

     

    그 와중에도 새벽배송 쿠팡 차와 생수 배송 트럭은 숨 가쁘게 골목을 누빈다. 24시간 불을 켜두고 있는 길 건너 세븐일레븐 창 위로, 빌딩 4층과 다른 빌딩 7층 스터디카페의 노란 불빛이 어스름한 새벽 공기를 삐져나온다. 저 불빛 아래서 또 누군가는 인생을 걸고 밤을 새웠을 것이다. 앞 건물 오피스텔 야간조 수위 아저씨는 본인이 관리하는 건물 외곽을 돌며 힘겹게 빗자루질을 한다. 무슨 경계라도 있는 듯 바로 앞 남의 건물 쪽 담배꽁초는 그냥 지나친다. (세상 사는 법이 다 그렇다. 내 구역 하나 지키기도 벅찬 나이다.)

     

    숨이 턱턱 막히던 습식 사우나 같던 새벽의 여름 공기는 이제 가을 공기에 자리를 내어준 지 오래되었다. 찬 바람이 뺨을 스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언제나 그렇듯 커피머신 전원을 올리고 카페 불을 켠다. 오늘은 단체 건이 바로 잡혀 있어 불판 가스 불부터 당겼다. 샌드위치 빵 굽는 토스트기도 예열을 시킨다.

     

    나만의 온전한 카페 안 새벽 시간, 이 시간을 홀로 보내기는 외로워 맥북 에어 상판을 올린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노트북 상판을 올리면 어제 내가 내렸던 화면이 알람처럼 바로 일어나며 환하게 화면을 밝혀주는 맥북이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 넷플릭스에는 뭐가 올라왔나 보니, 시리즈물 랭킹 1위에 '스캔들'이 떡 하니 있다. 얼마 전에 오픈한 것 같은데 벌써 1등이야 싶어, 혼자밖에 없는 틈을 타 스캔들을 켜고 보기 시작했다. 흐흐.

     

     

    반반포장. 단골 손님이기에 기꺼이 해드린다.

     

     

     

    타코 샌드위치.

     

     

    불판 앞의 독백, 야릇한 소리와 카뮈의 뫼르소

    오전 8시까지 BLT 샌드위치 8개, 타코치킨 샌드위치 8개, 베이컨모짜 토스트 15개를 만들어야 한다. 대략 금액으로는 20만 원 돈이다. 4년 장사 짬밥으로는 1시간에 10만 원 정도의 음식을 만들 수 있지만, 채소 다듬고 손이 더 가는 샌드위치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새벽 4시에 일어났더니 눈꺼풀이 무거웠는데, 어제 마트에서 산 제로콜라를 시원하게 들이켠다. 나이가 드니 슈가 이슈가 있어 이젠 탄산음료는 제로만 먹는다. (서글프지만 몸 생각해야 할 나이다.)

     

    쉬지 않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포장하고, 갓 구운 토스트는 식지 말라고 커피머신 상단에 가지런히 올려 보관한다. 8시가 넘어가니 교회 권사님들이 약속대로 픽업을 해가지고 가신다. 아내와 아들은 일요일마다 교회를 열심히 나가는데 나는 장사 때문에라도 갈 수가 없다. (이렇게 빵이라도 정성스레 구워 보내는 게 내 나름의 주일 성수인지도 모르겠다.)

     

    해가 떠오르고 맥북으로는 넷플릭스 스캔들을 보며 음식을 조리하고 있었는데, 헉 순간 민망하고 야릇한 장면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매장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서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나 혼자 괜히 찔려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카페가 있는 오피스텔이 지은 지 5년 차라 섀시가 좋아서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 걱정은 없다. 손님이라도 들어오면 큰일 날 일인데 문 중앙에는 'CLOSED' 팻말이 붙어있어 조금 안심이 된다. 그래, 스캔들 속 그 야릇한 장면을 혼자서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 넷플릭스 아이디를 공유하는 아내에게 시청 기록이 같이 뜨는 게 나중에 한 소리 듣는 건 아닌가 하는 약간의 걱정이 되긴 했다. (이그, 소심한 놈 같으니라고.)

     

    11시부터는 다시 교회 토스트 50개 주문을 쳐내야 한다. 배달 영업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애매하다. 계란물도 만들고 포장 케이스도 접고 해야 하는데, 오전 단체 건이 끝난 후 체력이 많이 소진돼서 배달의민족을 비롯한 배달 어플 영업시간을 오후 1시 배달 이후 시간으로 미뤘다. 일요일도 일하는 나에게 주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단체 건도 만들면서 배달 알림음 터지고 홀 워킹 손님까지 받는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조금 늦었다. 이래저래 뭘 하다 보니 오후 단체 건을 만들기 시작한 시간이 11시 30분이 조금 지났다. 넷플릭스 스캔들에 너무 빠져 있어서이기도 했다. 영상만 보는 나 자신이 조금 못마땅해서 핸드폰으로 밀리의서재 오디오북 '이방인'을 듣기 시작한다. 어제 잠자기 전 조금 듣다가 일어나 보니 완독이 되어 있었다. 귓가에 조금 맴돌기는 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처음부터 다시 듣기 시작한다.

     

    이방인의 첫 구절은 유명하다.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라는 강렬한 첫 구절로 시작하는데, 이방인에서 카뮈는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른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잠시 정지아 작가가 카뮈를 오마주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의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냉소적인 정신을 가진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 다 듣지는 못했지만 들을수록 더 듣고 싶어지는 명저임은 틀림없다. 타협 없는 뫼르소의 목소리를 귀에 얹고 기계처럼 계란을 부쳤다.

     

     

    베이컨 모짜 토스트

     

    3년 된 니로와 일요일 밤의 한일전

    오후 1시, 오피스텔 지하에 있는 산 지 만 3년 된 니로 하이브리드 트렁크에 토스트 50개를 싣고 교회로 직접 배달을 갔다. 본당 2층 소극장에 갖다주면 된다. 몇 번 가보았고 아내와 아들이 다니는 교회라서 잘 알고 있는 길이다. 카페에서도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무사히 잘 배달을 하고 카페로 돌아오는 길, 어제부터 이어지는 단체 건으로 주말 전에는 약간의 조바심이 있었는데 모든 단체 건이 별탈없이 지나갔다. 다행이다. 혹시 내가 모르는 머리카락이나 이물질이 들어갈 수 있어 배달 나가는 음식은 항상 걱정이긴 하다. (자영업자의 평화란 이토록 소박하고 살얼음판 같다.)

     

    매장으로 돌아와 남은 설거지를 끝내고 주변을 정리했다. 현관문을 닫고 자물쇠를 단단히 채워 잠갔다. 딸깍, 쇠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오늘 하루 장사가 끝났다. 오늘은 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 한일전이 있는 날이다. 경기 시간은 저녁 7시 40분. 내 머릿속 농구 국대는 하승진 시절에 머물러 있었는데, 요 며칠 유튜브 농구 클립을 보다 이현중이라는 기가 막힌 선수를 알게 되었다. 슛 터치가 정말 예술이다.

     

    일단 집으로 들어가 뻐근한 다리를 뻗고 한숨 돌려야겠다. 저녁 경기 시간에 맞춰 교촌치킨 한 마리 반을 배달시킬 예정이다. 식구 셋이 둘러앉아 바삭한 닭다리 뜯으며 목청껏 응원해 볼 참이다. 꼭 일본을 이겨서 오랜만에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면 좋겠다.

     

    새벽 4시부터 꼬박 서서 일하느라 허리도 쑤시고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만큼은 제법 가볍다. 식구들과 둘러앉아 치킨 뜯으며 농구 볼 생각에 피로가 조금은 씻겨 나가는 기분이다. 그래, 이 맛에 또 지치지 않고 일주일을 버텨내는 거다.

     


    [D-41 오늘의 마감 정산]

    • 오늘의 총매출: 233,000원 ( 오후 1시 배달건 매출은 어제 선결제로 어제 매출로 잡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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