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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45] 아침 폭격과 하루키,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사치
    삶과 사유의 기록/50대 인생 2막 도전기 2026. 9. 1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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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8시 문을 열자마자 정신없이 줘 터졌다.

    8시 03분, 배민 알림이 찢어지게 울리더니 수비드 치킨샐러드에 스리라차마요 소스 4개, 수비드 포크 추가, 타코치킨 40g에 크래미 50g 추가, 스프, 복숭아 아이스티까지 옵션만 주렁주렁 달린 주문서가 뱀 대가리처럼 길게 뽑혀 나왔다. 숨 고를 틈도 없이 8시 07분엔 홀에서 불고기 고구마 샌드위치와 아이스티를 시키고, 같은 시각 쿠팡이츠에서 바질 샌드위치, BLT 샌드위치, 계란듬뿍 콤보, 불고기 루꼴라와 타코치킨 과카몰리 믹스 토스트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주인장이 맘 떠난걸 아는지 영업전 포스 컴퓨터가 망설이다.

     

    쿠팡 배송 비닐봉지가 종이로 바뀐것이 요새 배달된다.

     

    재료 준비도 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야말로 주문 폭탄을 정면으로 맞았다. (하루하루가 예측이 안 되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릴 위에 빵을 얹고 계란물을 붓는 와중에 홀 워킹 손님 한 분이 들어섰지만, 주문이 밀려 지금은 도저히 조리가 불가능하다고 죄송하다며 돌려보내야 했다. 손이 두 개뿐인 1인 매장의 처절한 한계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배민과 쿠팡을 황급히 막아놨더니, 이번엔 그 틈새를 비집고 요기요 주문 벨이 사정없이 울려댄다. 샤갈.

     

    8시 41분 요기요(계란듬뿍, 햄치즈, 베이컨모짜, 타코치킨과카몰리 콤보), 8시 49분 홀(빅 닭가슴살 샐러드), 8시 54분 전화(닭가슴살 샌드위치, 스프, 발사믹소스 추가), 9시 11분 홀(베이컨모짜), 9시 20분 홀(햄치즈 콤보, 아아), 그리고 9시 30분 아내의 BLT 샌드위치 반쪽과 따뜻한 라떼 주문까지.

     

    메뉴가 하나로 통일된 것도 아니고 저마다 제각각이라 발바닥에 불이 나다 못해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 장사 4년 차 짬밥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다 집어던지고 도망쳤을 게 뻔하다. 알바가 한 명 더 붙어 있어도 버거운 물량 앞에서 나의 육체적·정신적 임계치가 턱밑까지 차올랐다. 속으로 비명을 길게 지르고, "시발" 소리를 목구멍 뒤로 꾹 삼켜가며 간신히 마음을 억눌렀다.

     

     

    주문 폭탄을 마무리하고 아내에게 만들어주고 남는 BLT샌드위치 반쪽과 제로콜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수수료 30%의 덫과 진짜 장사의 맛

    오전에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갈아 넣은 덕에 오늘 기본 매출은 넉넉히 당겨두었다. 하지만 아침의 아찔한 기억 탓에 11시가 되자마자 배달 어플들을 죄다 일시 정지시켜 버렸다. 엉뚱하게 배달 건 쳐내느라 눈앞에 찾아온 홀 워킹 손님을 돌려보내는 바보짓을 더는 반복할 수 없었다.

     

    배달 대행료에 중개료까지 수수료만 30%씩 뭉텅이로 떼어가는 배달 주문 붙들고 있느라, 기껏해야 카드 수수료 몇 푼 떼는 고마운 홀 손님을 놓치는 건 장사꾼으로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배달만 죽어라 할 거면 비싼 권리금 주고 1층에 있을 이유가 없다. 월세 싼 지하로 내려가는 게 정답이지.

     

    11시 30분부터 본격적인 점심 홀 손님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늘 장부를 쓰고 식사하는 회사 직원분이 반갑게 첫 스타트를 끊어주었고, 요 며칠 연속으로 찾아오는 중년 여성 두 분이 밀박스 두 개와 따뜻한 커피를 단정하게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뒤이어 클래식 오믈렛 밀박스 주문까지.

     

    배달 알림음의 그 신경 긁는 소음만 꺼져도 홀 손님은 혼자서 여유 있게 컨트롤이 된다. 손님 눈을 마주치며 따뜻한 음식을 건네는 것, 이게 바로 오프라인 장사의 진짜 근간이다. 9월 들어 홀 손님도 늘고 전체적인 일매출 흐름도 나쁘지 않아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오후의 고요,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사치

    오후 3시가 넘어가자 거짓말처럼 매장이 한산해졌다. 창밖 날씨가 에어컨을 끄면 살짝 후텁지근해 냉방을 틀어두었다. 시원한 매장에 홀로 남아 멍하니 시간을 죽일 수는 없는 법이다. 며칠 전 알라딘 중고로 사둔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펼쳐 들었다. 민음사에서 새로 번역해 화제가 된 책인데, 밀리의서재나 윌라 같은 오디오북 플랫폼에선 도통 찾을 수가 없어 결국 종이책을 주문했다.

     

    첫 장부터 몰입도가 상당하다. 하루키 특유의 메마른 듯 끈적한 문장들을 곱씹어가며 눈으로 읽고 가슴속에 차곡차곡 새겨 넣었다. 먼 훗날의 꿈이긴 하지만, 나 역시 언젠가는 내 손으로 소설 한 편을 써내려가고 싶다는 열망이 늘 가슴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고 텅 빈 매장을 둘러본다. 문득 마음속에 서늘한 한 줄기가 스친다. '두려워 말라.'

    그래, 올해 토스트 가게를 접든, 아니면 내 손으로 핸들을 잡고 택시 운전을 시작하든, 한 시절의 끝과 새로운 시작 앞에서 지레 겁먹지 말자. 나에게 두려움 따위는 사치다. 내 등 뒤에는 든든한 아내와 훌쩍 큰 아들이 있고, 아직 내 두 팔다리는 멀쩡하고 건강하다. (이만하면 세상천지 무엇이 두렵겠는가.)

     

    오늘 오전 그 지옥 같던 주문 폭탄도 혼자서 기어코 다 쳐내지 않았던가. 묵묵히 빵을 굽듯 내 삶도 그렇게 묵묵히 버텨내면 그뿐이다. 스스로에게 투박한 위로 한마디 건네며, 오늘도 조용히 매장 조명을 끈다. 

     

     


    [D-45 오늘의 마감 정산]

    • 오늘의 총매출: 269,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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