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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46] 벽돌을 굽는 춘희와 토스트를 굽는 나
    삶과 사유의 기록/50대 인생 2막 도전기 2026. 9. 1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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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기분이 아주 드럽다.

     

    눈뜨자마자 확인한 밤사이 미국장에서 4개월 넘게 애지중지 쥐고 있던 실리콘모션이 하루 만에 -16.7%를 내리꽂았다. 캭, 소리가 절로 나왔다. 상방으로 +16%를 쏴줘도 시원찮을 판국에 밑으로 두들겨 맞았으니 속이 쓰리다 못해 거시기하다. 엔트로픽 CEO가 AI 발전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소리를 해대는 바람에 반도체 섹터 전체가 폭격을 맞았단다. (세상일이 어쩜 이리도 내 맘처럼 안 풀리는지 원.)

     

    매장에 출근하자마자 배달 어플 4개의 오픈 시간을 오후 12시로 죄다 미뤘다. 12시까지 유치원 단체 주문이 잡혀 있어서다. 토스트콤보 18개에 음료 18개. 한 달에 한 번꼴로 찾아주는 단골인데, 결제도 통장으로 깔끔하게 미리 쏴주시는 아주 고마운 귀인이다.

     

    부지런히 포장 박스를 접고, 계란물을 만들고, 재료를 세팅했다. 오전 10시까지 서너 팀 홀 워킹 손님만 얼른 쳐내고는 아예 매장 문을 걸어 잠갔다. 혼자 일하는 몸뚱이 하나로 단체 18개에 홀 손님까지 동시에 받다간 사달이 난다. 매출 20만 원짜리라 딱 두 시간 동안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토스트를 일사천리로 구워 커피머신 상단에 올려 온기를 유지시키고, 틈틈이 음료를 뽑아냈다. 매장 4년 차가 되니 혼자서 이 정도 쳐내는 건 껌이다. 폐업 날짜가 코앞인데 조리 스킬은 지금이 인생 최고 전성기다. (이 손에 익은 경험치가 아깝다는 생각이 불쑥 들며, 가게를 좀 더 해야 하나 싶은 실없는 미련이 고개를 들었다.)

     

    단체 주문일 경우 토스트는 좀 고급스럽게 종이백에 담아 보낸다.

     

     

    음료 18잔. 배달 영업중 한번도 음료가 샌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참 신기하다.

     

     

    폐업을 앞두고 늘어난 손님, 그리고 춘희의 벽돌

    12시 땡 하자 홀 손님들이 밀려들었다. 날이 제법 선선해지더니 점심 손님이 부쩍 늘었다. 말이 살찌는 가을이라는데, 웬일인지 샐러드를 찾는 여자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이상하게 폐업 날짜를 받아두고 나니 장사가 더 잘 붙는다. (인생 참 얄궂다.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숨을 좀 돌리고 오디오북 헤드폰을 귀에 꽂았다. 천명관 작가의 <고래>를 드디어 끝까지 다 들었다. 파란만장한 인물들이 얽히고설킨 거대한 대서사시. 천상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소설 속 춘희는 잿더미 폐허 속에서 묵묵히 붉은 벽돌을 굽고, 나는 이 좁은 매장에서 토스트 식빵을 굽는다. 춘희의 기구한 운명이나 내 하루나, 각자의 자리를 묵묵히 버텨내는 꼴이 묘하게 겹쳐 씁쓸한 헛웃음이 샜다.

     

     

    상암에서 찾아온 처남, 50대의 길목에서

    오후 3시가 훌쩍 넘었을 무렵, 직업군인인 처남이 건강한 모습으로 불쑥 매장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마포 상암 쪽에 드론 교육을 받으러 왔다가 귀가하는 길에 매형 얼굴 보겠다고 들렀단다.

     

    냉커피 한 잔 타서 건네고 서로 안부를 물었다. 나는 50대 중반, 처남은 나보다 딱 열 살 어린 40대 중반이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마치고 군대에 들어가 말뚝을 박더니,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착실하게 가정을 꾸리고 아들딸 낳아 번듯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처남의 속내가 툭 삐져나왔다. 상사로 복무 중인데 53세 정년을 채우고 제대하면 당장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슬슬 고민이 깊단다. 군대에서도 사무직이 아니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체력은 부치고 앞날은 막막하다는 눈치였다. 열 살이나 어린 처남 녀석이나 나나, 50대 이후의 삶이라는 낭떠러지 앞에서 각자 가족들 부양할 걱정에 한숨을 쉬는 처지가 똑같아 마음이 짠했다. (서로 더 나을 것도 없는 신세끼리 마주 앉아 헛헛하게 웃었다.)

     

    유치원 단체 20만 원이 든든하게 받쳐준 덕에 오늘 마감 매출은 나쁘지 않다.  이달 초 대학교 100만 원 단체 건 이후로 9월 매출 흐름이 꽤 쏠쏠하다. 통장을 보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덜컥 폐업을 결정한 내 선택이 과연 맞는 길인가 하는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최종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머릿속에서 이 줄다리기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고래>의 주인공 춘희는 제 명을 다할 때까지 벽돌을 굽다 갔는데, 과연 내 앞날은 어디로 흘러갈까. 샤갈. 일단 토스트는 예정대로 올10월말까지만 굽는 걸로 마음을 다잡아본다. (물론 오늘 저녁 설거지통 싹 비우는 게 먼저다.)

     


    [D-46 오늘의 마감 정산]

    • 오늘의 총매출: 41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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