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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7] 배달 알림과 괄약근의 습격, 그래도 캔 사이다 하나 건네는 하루삶과 사유의 기록/50대 인생 2막 도전기 2026. 9. 14. 18:14반응형
덜컹거리는 출근길과 숨 막히는 아침 9시의 러시
8시 44분, 어김없이 쿠팡 주문 알림이 날카롭게 매장을 울린다. 이상하게 아침 첫 주문 소리는 매번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사람들의 배꼽시계는 다 거기서 거기라 한 번 터지면 몰아친다는 걸 알면서도, 주문창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의 긴장감은 몇 년을 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8시 47분, 이번엔 유선 전화다. 양손을 놀리지 않으려고 머리에 뒤집어쓴 헤드폰 너머로 닭가슴살 샐러드와 계란듬뿍 토스트 콤보 주문이 접수된다. 빵을 굽고 계란을 부치며 손을 바쁘게 놀리는데, 9시 정각, 불길한 예감은 단 1초도 빗나가는 법이 없다. 매장 앞 도로 턱을 이어주는 고무 받침대를 덜컥덜컥 요란하게 밟으며 파란색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선다. 아내다.
도서관 가기 전 커피와 토마토, 삶은 계란 하나를 챙기러 들른 것이다. 주문 두 건이 밀려 목구멍까지 차올랐다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이럴 땐 그냥 입 꾹 다물고 손을 두 배로 빨리 놀리는 게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 하필 커피도 손이 제일 많이 가는 따뜻한 라떼다. 우유 스팀 레버을 당겨 칙칙거리는 소리를 내는 사이, 조리 완료 시간도 안 됐는데 매장 스피커에서 쿠팡 파트너 도착 알림이 뜬다. 문이 벌컥 열리며 "쿠팡입니다!" 외치는 기사의 목소리.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등 뒤로 꽂히는 기사의 시선과 문밖에서 기다리는 아내를 의식하니 손끝이 바짝 굳어온다. 누군가 내 조리 과정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평소 잘되던 손놀림도 꼬이고 음식이 더 늦어지는 건 만고의 진리다.

이 놈의 쓰레기는 매출이 없어도 쌓인다. 신기하다. 어퍼컷 같은 주문 폭격 속에서 건져 올린 작은 온기
점심 장사가 시작되는 11시 40분, 한 손님이 들어와 수비드 포크 샐러드를 시키며 대뜸 한마디를 얹는다. "고기 좀 많이 주세요!"
순간 턱주가리에 불의의 어퍼컷을 한 대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본사에서 정량으로 딱딱 소분 포장되어 들어오는 고기를 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고깃집 가서 삼겹살 1인분 시켜놓고 2인분 같은 1인분을 달라는 것과 뭐가 다른지 속이 부글거렸지만, 겉으로는 사람 좋은 표정으로 "고기가 정량으로 정해져 나와서 죄송합니다"라며 넘겼다. (사실 내가 죄송할 일은 눈곱만큼도 아니다.)
그렇게 한숨을 돌리려던 11시 47분, 배민에서 밀박스 둘, 샐러드 하나가 꽂히더니, 10분 뒤인 11시 57분에 또 밀박스 둘과 음료 두 잔이 연타로 들어온다. 좁은 주방에서 그리들 불판을 마주하고 서 있자니 샐러드고 밀박스고 다 팽개치고 "나 안 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게다가 이 긴박한 와중에 엉덩이 깊은 곳에서는 아침 뒤처리가 덜 끝난 건지 신호까지 살살 올라온다. (이놈의 장은 꼭 제일 바쁠 때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별수 있나.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끝내 주문을 다 쳐냈다. 폭풍이 지나가고 지친 몸으로 정리를 하려는데, 구세주 같은 단골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내일 음료 18잔에 토스트 콤보 18개를 문자로 넣겠다는 원장님의 목소리. 내일 기본 매출은 깔아두었구나 싶어 굳었던 가슴이 스르르 풀렸다.
에어컨을 끄면 덥고 켜면 서늘한 날씨 속에서, 불판과 냉장고 모터 열기를 견디다 못해 리모컨을 쥐락펴락했다. 돋보기를 코끝에 걸치고 얼마 전 사둔 정지아 작가의 책을 읽다 스르르 졸음이 몰려올 무렵, 햄치즈토스트 콤보 7개라는 '로또' 같은 4만 원짜리 단체 배달이 들어왔다. 단일 메뉴 7개라니, 이렇게 고마운 주문이 없다. 빵을 굽는 사이 들어온 여학생 둘도 샌드위치와 샐러드, 토스트와 음료를 살갑게 주문해 간다.
가게를 정리하고 밖을 내다보니, 오피스텔 청소 주임님이 주말새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느라 온몸이 땀범벅이다. 지난번 대학교 단체 주문 때 남겨둔 캔 사이다 하나를 시원하게 건넸다. 동네에 조그만 독립서점과 글방을 운영하는 분도 있다는 걸 알았다.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혼자 속을 끓이는 순간도 많지만, 또 이렇게 서로 부대끼고 챙기며 사는 게 인생이지 싶다. 치열했던 월요일 하루도 무사히 버텨냈다.
p.s 샤갈. 미국장 시장도 안했는데 토스 앱 알림이 계속 온다. 주식 가격이 -5% 떨어졌습니다.
[D-47 오늘의 마감 정산]
- 오늘의 총매출: 25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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