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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9] 8평 매장의 주말 풍경과 엇갈리는 발걸음들삶과 사유의 기록/50대 인생 2막 도전기 2026. 9. 12. 13:46반응형
밖을 지나가던 중년 남자 하나가 카페 앞 메뉴 배너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출근길 발걸음을 멈추고 메뉴판을 훑는 사람이야 하루에도 수십 명씩 지나치니,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커피머신을 예열하고 바닥을 쓸었다. (장사 짬밥이 몇 년인데 이런 날은 왠지 모르게 뒤통수가 서늘하다.)
잠시 후 딸랑, 문이 열리며 그 남자가 들어섰다. 카운터 위에 매달아 둔 TV 모니터를 한참이나 올려다본다. 메뉴 화면이 3초 간격으로 휙휙 넘어가니 답답했는지, 안경 너머로 눈을 잔뜩 찌푸린 채 미간을 좁히고 서 있다.
"샌드위치, 토스트, 샐러드, 커피 다 있습니다."
나름 친절하게 안내를 건넸더니 돌아오는 말이 영 엉뚱하다.
"야채토스트는 없나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샌드위치와 토스트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샌드위치를 보고 토스트라 부르고, 토스트를 보고 샌드위치라 부르기 일쑤다.) 그가 찾는 건 분명 버터 두른 철판에 양배추랑 계란을 섞어 부쳐내고 설탕에 케첩을 듬뿍 뿌려주는, 그 옛날 길거리 토스트였다.
"야채토스트는 없는데요."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인사 한마디 없이 홱 돌아 나갔다. 그러고는 통창 너머 길 건너 세븐일레븐 편의점으로 쏙 들어간다. 삼각김밥이라도 사러 간 모양이다. 아, 오늘도 하루가 심상치 않다.

우리 카페 정말 찐 단골 손님이다. 슬로우 비디오 단골손님과 틴트 바르는 아이들의 소음
8시 39분, 반가운 찐 단골손님이 들어섰다. 이분은 늘 슬로우 비디오를 틀어놓은 것처럼 움직인다. 카페 통창을 따라 느릿느릿 걸어와 문을 아주 천천히 열고, 익숙한 걸음으로 키오스크 앞에 선다.
우리 동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시는 분이다. 할머니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늘 헷갈린다. 기껏해야 나하고 나이 차이가 열댓 살 위쯤 되어 보이시는데. (환갑 조금 넘으신 분한테 할머니 소리가 입 밖으로 쉽게 떨어질 리 없다.) 지난번에 오셨을 때 슬쩍 "혹시 6단지 사시지 않나요?" 여쭤봤더니, "어머, 맞아요!" 하며 단지 안에서 몇 번 마주친 걸 기억이 있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바질치즈토스트와 계란듬뿍 토스트를 호밀빵으로 바꾸어 주문하고, 바람이 제법 서늘해진 탓인지 따뜻한 말차라떼를 한 잔 곁들이신다. 조용하고 깔끔하게 드시고는, 들어올 때와 똑같이 슬로우 비디오 속 한 장면처럼 느긋하게 문을 밀고 나가셨다. 소란스러웠던 마음에 잠시나마 잔잔한 쉼표가 찍히는 기분이다.
주말답게 배달과 포장 주문 알림음도 쉬엄쉬엄 울린다. 딱 혼자서 여유 있게 쳐내기 좋은 페이스다. 나도 사람인지라 주말에는 몸도 마음도 조금 쉬어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직원 두고 알바 쓰던 시절에는 토요일이 눈코 뜰 새 없이 가장 바쁜 날이었는데, 혼자 운영하는 1인 매장이 되고 나서는 평일 점심 러시보다 주말 매출이 더 안 나오는 날이 허다해졌다. (배달 어플 수수료 떼이고 재료비 마진 따지다 보면 차라리 이렇게 조용한 게 덜 피곤하다 싶다가도, 월말 결산 통장 잔고를 떠올리면 속이 바짝 타들어 간다.)
12시 30분이 넘어가자 8평짜리 좁은 매장이 갑자기 와글와글 소란스러워졌다. 낯이 익다 했더니 몇 번 왔던 아이들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넷이 몰려오니 수다가 보통이 아니다. 각자 토스트 단품을 하나씩 고르더니, 한 아이가 카운터로 쪼르르 와서 청포도에이드는 현금으로 결제하겠다고 야무지게 5천원짜리를 내민다.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집에 있는 아들놈 생각이 먼저 스친다. '우리 아들도 저 나이 때 학교에서 저렇게 친구들이랑 어울렸나.'
테이블 쪽을 힐끔 보니 대화 주제가 어지럽다. 무슨 챗GPT 이야기가 나왔다가, 좋아하는 남자아이 이야기가 나왔다가, 쉴 새 없이 까르르 넘어간다. 그러다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녀석들이 가방에서 파우치를 꺼내더니 화장을 톡톡 고치고 있는 게 아닌가. 울긋불긋 진한 화장은 아니고 틴트 바르고 팩트 두드리는 기초 화장 정도인데, 어쨌든 우리 자랄 때와는 세상이 완전히 딴판이다. 어디 시내라도 놀러 가기로 한 모양이다. 오랜만에 적막하던 카페 안에 아이들의 생기 넘치는 소음이 들어차니 그것도 썩 나쁘지만은 않다.

샌드위치 만드는 실력은 최상이다. 조리실력은 최상인데 돈은 못번다. 이게 자영업자의 현실. 남은 49일, 그리고 임대 문의
오늘도 이렇게 주말 토스트 카페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다행히 이번 주 미국 주식이 조금 반등을 해준 덕에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가 약간은 가벼워졌다. 텐베거를 노리며 장기로 쥐고 버티는 녀석들이 부디 제 갈 길을 제대로 찾아가 줘야 할 텐데.
오후 1시 30분 점포 임대 문의가 문자로 왔다. 대략적인 월 매출과 재료비 포션, 인건비와 혼자 운영할 때 마진 같은 걸 이것저것 캐묻더니, "더 궁금한 게 생기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하고 문자를 마쳤다.(그 '다음'이라는 게 과연 올지 모르겠다. 자영업 바닥에서 저런 말은 대개 안 오겠다는 뜻이다.)
가게 문을 닫기로 한 날까지 이제 딱 49일 남았다.
49일 안에 부디 좋은 임차인이 나타나 도장을 찍었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소원이 없겠다.
[D-49 오늘의 마감 정산]
- 오늘의 총매출: 163,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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