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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9] 입구컷 손님과 뚝 떨어진 빈혈 수치, 그리고 한 달 남은 가게삶과 사유의 기록/50대 인생 2막 도전기 2026. 10. 2. 17:34반응형
어제는 카페 마감 셔터를 내리고 병원 진료 때문에 올라와 계신 장인어른을 모시고 동네 추어탕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서울 올라오실 때마다 보양시켜 드린다고 장어집을 줄기차게 다녔는데, 요즘 부쩍 치아가 부실해지셨다기에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추어탕으로 메뉴를 바꿨다. 혹시나 싶어 "아버님, 추어탕은 잘 드십니까?" 여쭈니, "음... 먹어." 하고 짧게 대꾸하신다. 맨정신엔 워낙 말수도 적으신 데다, 푸석하게 잦아든 목소리에 기운이 통 없어 보였다.
토당동 청담추어정으로 차를 몰았다. 동충하초 추어탕에 미꾸라지 튀김, 간장게장과 보리굴비까지 으리으리하게 깔리는 세트 메뉴 2인분에 기본 추어탕 하나, 그리고 아직 애 입맛인 아들놈 먹일 돈가스까지 얹으니 상다리가 부러져라 음식이 쏟아져 나왔다. (이 집은 간판은 추어탕인데 솔직히 알 배긴 간장게장이 본체다.) 아버님 대접하러 갔다가 외려 우리 세 식구가 간만에 호사스럽게 배를 채웠다.
병원 가시는 어른께 작은방을 내어드리고, 나는 어젯밤에도 안방 침대 밑바닥에 캠핑용 발포 매트를 깔고 웅크려 잤다. 아침에 눈을 뜨니 허리가 묵직하니 결려오며 시큰한 통증이 뼛속을 긁는다. 출근길 공기는 또 어찌나 사납게 차가워졌는지. 며칠 사이에 기온이 수직 낙하를 했는데 장롱 속 두툼한 겨울 외투는 꺼내둘 엄두도 못 냈다. 얇은 옷을 서너 겹 겹쳐 입으며 '미리 좀 꺼내둘걸' 후회가 스쳤지만, 그래도 움직이다 보면 열이 오르겠지 싶어 옷깃을 여미며 가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제 저녁 먹은 추어탕. 청담추어정 토당점 7시 40분의 입구컷, 그리고 꼬여버린 하루의 시작
오픈 준비를 대충 마치고 시계를 보니 7시 30분. 정식 오픈 시간은 8시다. 출근이 좀 늦었던 터라 매일 아침 거르지 않는 야후 파이낸스 미국 시황 정리를 부랴부랴 키보드로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7시 40분쯤 되었을까, 밖이 꽤 추웠는지 양팔로 제 몸을 바짝 감싸 쥔 젊은 여자 손님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유리문을 밀고 불쑥 들어왔다. 시계를 힐끔 보니 아직 정식 오픈까지 20분이나 남은 시간이다. 예전 같았으면 사람 좋은 얼굴로 주문을 받았겠지만, 아직 블로그 글도 마무리를 못 지었고 손님을 맞을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였다. 카운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채 건조하게 말을 건넸다.
"저, 아직 오픈 전이라서요."
"네?? 카페 앞에 푯말이 'OPEN'으로 걸려 있어서 들어왔는데요?"
돌아오는 목소리에 날이 바짝 서 있다. (아차, 어제 마감하고 푯말 뒤집는 걸 깜빡했구나 싶었다.) "아, 너무 죄송합니다. 아직 재료 준비가 덜 끝나서요... 죄송합니다."
내가 푯말 관리를 잘못한 탓도 있지만, 장사 시작도 전에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를 연거푸 두 번이나 읊조리고 나니 속이 영 텁텁했다. 입구컷을 당한 처자는 기분이 잔뜩 상했는지 홱 토라져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문이 닫히는 서슬을 보며 문득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아침 첫 손님을 이렇게 쫓아내듯 보내면 그날 장사는 꼭 꼬이던데, 오늘 하루도 참 험난하겠구나 싶었다.)
불길한 촉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오전 내내 쥐 죽은 듯 조용하더니 배달 주문은 달랑 1건 들어온 게 전부였다. 이 추세면 오늘 매출은 말 그대로 폭망이다. 멍하니 홀을 지키고 있는데 정오 무렵 아내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어제 일신병원에서 피검사랑 초음파를 돌렸던 장인어른 진료가 끝난 모양이었다.
"여보! 아빠 피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빈혈 수치가 너무 바닥이라 의사 선생님이 당장 오후에 입원해야 한대. 필요하면 수혈까지 받아야 할 수도 있다고..."
"아... 그래? 어쩐지 어제 얼굴빛도 흙빛이고 너무 피곤해하신다 했더니만. 알았어."
여든 넘은 시골 노인의 축 처진 어깨
점심 장사를 대충 정리하고 나니, 장인어른 올라오셨다는 소식에 얼굴을 보러 온 인천사는 조카와 아내가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들어섰다. 어르신들 드시기 좋게 달달한 바닐라라떼를 따뜻하게 타서 내어드리고 홀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가만히 건너다본 아버님의 안색이 참 안쓰러울 만큼 어둡다. 올해로 여든을 훌쩍 넘기셨으니 성한 곳이 있는 게 도리어 이상할 나이라지만, 평생 땡볕 아래서 흙 파고 농사짓느라 까맣게 탄 얼굴은 탄력을 잃고 축 처져 있었다. 검버섯이 덕지덕지 내려앉은 눈두덩이는 퍼렇게 죽어 있어 척 보기에도 중환자 티가 역력했다. 아마 본인은 오늘 병원 진료만 후딱 끝내고 조카 차를 얻어타고 군산 시골집으로 곧장 내려갈 심산이었던 모양인데, 덜컥 입원 판정을 받고 발목이 잡히니 내심 속이 잔뜩 상한 표정이었다.
아내도 나도 걱정이 태산이다. 시골집에 노인네 둘만 덩그러니 남겨져 사는데, 장모님마저 다리가 성치 않아 거동이 불편하면서도 병원 문턱은 죽어도 안 가겠다고 버티시는 중이다. 그걸 곁에서 지켜보는 장인어른은 속이 터져 잔소리를 해대고, 요즘 두 분 사이가 영 냉랭하다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이 들며 제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판에, 옆에 있는 배필까지 아파서 끙끙대니 그 숨 막히는 고통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밥 먹을 때를 빼곤 말 한마디 안 섞는 적막한 집구석. 평생 낙으로 삼던 술담배마저 몸 때문에 강제로 끊어버렸으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역이실까. (두 분 다 80 언저리에 닿고 나니 정말이지 해가 다르게 몸이 꺾여나가는 게 눈에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가까이 모셔두고 병원이라도 자주 모시고 다니면 좋으련만, 군산과 고양은 너무 멀다.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아버님은 일산병원에 입원 수속을 밟으러 들어가셨다. 또 아내의 기나긴 병간호 고생길이 열린 셈이다. 입원실에서 쓸 슬리퍼에 속옷, 수건가지를 챙겨 들고 병원으로 내달리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가슴이 짠했다. 그래도 몇 년 부터 아내가 차를 몰기 시작한 게 천만다행이다. 만약 아내가 운전을 못 했다면 내가 당장 가게 문을 닫아걸고 앰뷸런스 기사마냥 이리저리 뛰어야 했을 테니, 살림도 장사도 진작에 결딴났을 거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D-29
아침의 그 입구컷 손님 때문이었을까, 오늘 하루 총매출은 11만원을 겨우 넘겨 처참하게 바닥을 쳤다. (이러고도 한 달 뒤에 계약 끝나면 가게 정리하고 택시 면허 살 돈을 남겨야 한다니, 정말 대책 없는 하루였다.)
그래도 텅 빈 가게를 지키며 건진 작은 위안이 하나 있다면, 내 가려운 곳을 기막히게 긁어주던 김홍 작가의 소설 '말뚝들' 오디오북을 끝까지 다 완청했다는 것. 그리고 곧바로 이어 듣기 시작한 심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헛헛한 마음을 조용히 다독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장인어른은 이번 주말 내내 병원에 누워 굵은 바늘을 꽂고 정밀검사를 받으셔야 한다. 어른이 아프면 결국 딸인 아내의 뼈가 녹아난다. 오늘 저녁엔 퇴근하고 고생한 아내 손을 꼭 쥐어주며 따뜻한 밥 한 끼 사 먹이고 어깨라도 주물러줘야겠다.
그렇게 10월의 둘째 날이 저물어간다. 올해 10월 계약 만료, 이제 이 좁은 토스트 가게와 작별할 날도 채 30일이 남지 않았다. 4년 넘게 버텨온 기름때 묻은 철판을 뒤로하고 개인택시로 넘어가야 하는 시간. 긴장감과 막연한 기대,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무게감이 뒤섞여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사납게 휘젓고 지나간다.
[D-29 오늘의 마감 정산]
- 오늘의 총매출: 116,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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