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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8] 새벽 2시의 알람과 100개의 샌드위치, 그리고 가을 하늘 아래서삶과 사유의 기록/50대 인생 2막 도전기 2026. 9. 3. 15:43반응형
새벽 1시 45분, 머리맡에서 알람이 요란하게 울린다. 손을 뻗어 끈다. 다시 새벽 2시, 또 울린다. 끈다. 결국 2시 10분, 세 번째 알람 소리에 빨갛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얼마 전 삐끗했던 허리가 여전히 뻐근해 침대에서 일어나는 동작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집안을 둘러보니, 야행성이라던 우리 집 고양이 녀석들은 거실 소파와 안방 화장대 위에서 대자로 뻗어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져 있다. 내가 화장실을 들락거려도 눈길 한 번 안 준다. 녀석들 팔자가 상팔자다, 훗훗.
오늘의 미션은 오후 3시까지 한국항공대로 보낼 단체 샌드위치 100개다. 반으로 커팅해서 총 200개로 소분 포장해야 하고, 탄산음료도 200캔을 챙겨야 한다. 서둘러 카페에 도착해 불을 켜고, 새벽 3시부터 본격적인 조립에 들어갔다. 1인 매장이라 알바도, 도와주는 손길도 없다. 예전엔 버거웠지만 요즘은 차라리 혼자 묵묵히 쳐내는 게 속 편하다. 어제 미리 재료 밑작업을 완벽하게 끝내둔 덕에 손은 제법 착착 감긴다.
새벽 5시 6분, 드디어 1차 목표인 30개(포장 60개)를 완료했다. 뻐근한 허리를 펴며 잠시 카운터에 앉아 실리콘모션(SIMO) 주가를 열어본다. +2% 상승. 휴, 다행이다. 이 난리통에 더 떨어지지 않고 240불을 지켜준 게 어디냐 싶어 가슴을 쓸어내린다.
오전 8시, 다시 30개를 추가로 싸서 총 60개 완성. 샌드위치는 60개지만 반으로 잘라 개별 포장하니 벌써 120개의 포장 팩이 쌓였다. 이 소분 작업이 손이 두 배로 가 참 번거롭다. 9시까지 미국 시황을 차분히 정리해 블로그에 올리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온다. 요즘 체중이 많이 불어 탄수화물을 끊고 다이어트 중인데, 허기 달래는 데는 역시 삶은 계란만 한 게 없다. 껍질을 까서 우물거리며 한숨을 돌린다.

내가 봐도 샌드위치 정말 잘 만들었다. 정말. '새의 선물'의 1969년, 그리고 2026년의 아르테미스
온밤을 지새우며 샌드위치를 싸는 동안 귀에는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 오디오북을 꽂아두었다. 예전에 들었던 작품인데 다시 들어도 참 좋다. 문장 하나하나가 어쩌면 이렇게 주옥같은지, 시대의 공기와 사람의 속내를 포착해 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책의 배경은 1969년이다. 바로 그해 7월, 인류는 아폴로 11호를 쏘아 올리며 달에 발을 디뎠다. 당시 사람들은 1970년대로 넘어가면 우주 과학이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거라며 흥분과 기대로 가득 찼다고 한다.
문득 피식 웃음이 난다. 공교롭게도 반세기가 훌쩍 지난 올해 4월 1일, 인류는 유인 달 탐사 우주선인 아르테미스 2호를 쏘아 올렸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우주 시대가 활짝 열릴 줄 알고 미국 주식 레드와이어(RDW)에 내 귀한 시드를 태웠었다. 1969년이나 2026년이나, 미래의 환상에 가슴 설레고 또 그 환상이 부서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 한결같다. 사람 사는 건 과거나 지금이나 다 똑같다.
가을 구름 아래 선 캠퍼스, 길었던 하루의 끝
오전 9시부터 다시 불붙은 작업은 오후 12시 45분이 되어서야 100개(200팩) 포장까지 완벽하게 끝이 났다.
11시부터 일반 손님들의 전화 주문이 몇 건 걸려왔지만, 단체 주문에 치여 어쩔 수 없이 거절해야 했다. 죄송한 마음에 속이 쓰리다. 하지만 이제는 단체 주문과 일반 주문을 동시에 쳐낼 만큼 내 체력과 매장 상황이 따라주질 않는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때다.
주문 금액 113만 원. 양이 워낙 방대해 오토바이 배달로는 5대 이상을 불러야 할 판이고 음료수 200개까지 실을 수가 없다. 게다가 매장에 이동식 카드 단말기가 없어, 배달 대행 기사님 한 분을 미리 학교로 보내 카드 결제부터 시원하게 받아두었다.
오후 2시 30분, 차 트렁크와 뒷좌석에 샌드위치 박스와 시원한 음료수를 가득 싣고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학교까지는 차로 딱 10분 거리다. 캠퍼스에 도착하니 마침 큰 행사가 한창이다. 담당자에게 무사히 인계를 마치고 감사의 인사를 나눈 뒤 차를 돌려 나왔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 걸린 구름은 어느새 완연한 가을빛이다. 활기차게 캠퍼스를 오가는 젊은 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자니 묘한 감회에 젖어든다. 나에게도 저토록 찬란하고 막힘없던 청춘의 시절이 분명히 있었는데. 《새의 선물》을 막 완독하고 난 직후라 그런지 가슴 한구석이 유독 뭉클하고 아련해진다. 다시 돌아와 불 꺼진 카페 카운터 앞에 우두커니 앉았다. 새벽부터 쉴 새 없이 달린 탓에 온몸의 마디마디가 쑤시고 오늘 하루가 참 까마득하게 길게 느껴진다.
오늘 저녁에는 식구들 데리고 동네 갈비집에 가서 든든하게 외식이라도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주식창 파란불 때문에 아직 아내의 굳은 표정을 다 풀어주지 못했는데, 노릇하게 구운 갈비 한 점에 슬그머니 화해의 손을 내밀어봐야겠다. 자영업자의 고단하지만 정직했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간다.
[D-58 오늘의 마감 정산]
- 오늘의 총매출: 1,1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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