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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가슴으로 전해오는 먹먹한 이야기, 이어폰 너머로 1999년을 만났다삶과 사유의 기록/내가읽은 책독후감 2026. 9. 14. 09:42반응형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땡겨요. 출근하자마자 배달 어플 네 개를 켜고 커피머신 예열 버튼을 눌렀다. 기계가 웅웅거리며 열을 올리는 동안 한쪽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았다. 이틀 동안 8평 매장에서 빵을 굽고 계란을 부치는 틈틈이 밀리의 서재로 듣던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을 이어 들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도 도무지 재생을 멈출 수가 없었다. 씻고 침대에 누워 불을 다 끈 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듣다가, 나도 모르게 새벽녘에야 까무룩 잠이 들었다(쉰이 넘어가니 몸은 천근만근인데, 어떤 이야기는 기어코 날을 새우게 만든다).
처음 김금희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배우 박정민의 출판사 '무제'에서 나온 『첫여름 완주』 오디오북 덕분이었다. 참 사람 속을 묘하게 건드린다 싶어 찾아보다가 2018년에 나왔다는 이 장편소설까지 손을 뻗게 된 거다. 남들은 한참 전에 다 읽고 지나간 길을 나는 이제야 숨 가쁘게 쫓아가 닿았다.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 넥타이 대신 땀 밴 점퍼를 입던 세기말
소설의 한가운데엔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고가 박혀 있다. 그 시절의 공기를 떠올리는 순간, 달궈지기 시작한 철판 앞에 서 있던 내 몸이 굳어졌다. 그래, 1999년. 세기말의 공포와 허무가 온 거리를 짓누르던 그해.
IMF 칼바람에 첫 직장에서 가차 없이 잘려 나갔던 때다.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앞길이 캄캄했다. 살기 위해 보험회사 문을 두드렸고, 이어서 한약재 배송 겸 영업을 뛰었다. 넥타이 맬 팔자는 애초에 못 됐다. 양복은커녕 땀 냄새 밴 점퍼 차림으로 무거운 한약재 자루를 트럭에 싣고 내리며 한의원과 약국 문턱을 닳도록 넘나들었다(그때 길바닥에 삼킨 자존심만 모아도 트럭 한 짐은 됐을 거다). 세기말의 불안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그 혹독했던 시절.
소설 속 경애와 상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남의 허구로 들리지 않았다. 그 시절 골목을 함께 헤매던 내 친구 이야기 같았고, 소주잔 기울이며 울분을 토하던 후배, 어깨를 툭 치며 "버텨라" 말해주던 선배 이야기 같았다. 나와 같은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해 온 작가였기에 이런 문장을 지어낼 수 있었을 거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철판 위로 문장 하나가 툭 떨어진다. 살다 보면 폐기 처분하고 싶은 마음이 어디 한두 번인가. 마진 몇백 원에 머리를 쥐어짜고 배달 기사님들 오가는 문소리에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펼 때면, 내 마음 챙기는 일 따위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집에 들어가면 소니 헤드폰을 푹 눌러쓴 채 등을 꼿꼿이 펴고 모니터 앞에서 원고를 써 내려가는 아내,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아들이 있다. 그리고 작년 8월 18일, 끝내 내 곁을 떠나신 아버님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가장이라는 이름표는 세월이 가도 왜 가벼워지질 않는 건지).그래도 살아야 한다. 1999년의 그 막막했던 시절도 한약재 자루 짊어지고 버텨냈는데, 지금의 이 8평 매장이라고 못 버틸 건 없다.
커피머신 압력계 바늘이 다 찼다. '띵동' 하고 배달 어플 알림음이 매장에 울려 퍼진다. 이어폰을 빼서 케이스에 넣고 앞치마 끈을 단단히 동여맸다. 폐기하지 않은 마음을 안고, 오늘도 내 자리를 지켜낸다.
p.s 지금은 김금희 작가의 2024년 신작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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